Joseph Gingold

요제프 긴골드,Josef Gingold(October 28,1909-January 11,1995)

                                  

러시아 태생의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긴골드(Josef Gingold)는 1909년 10월 28일 러시아와 폴란드 국경지대인 브레스트-리토브스크(Brest-Litovsk)에서 태어났다.

3살때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하였다.

1차 세계대전기간 긴골드의 가족은 독일 수용소에 감금되는 쉽지 않은 고생을 겪어야했으며,결국 가족들은 1920년 5월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된다.

긴골드는 뉴욕에서 전설적인 위대한 교육자 레오폴드 아우어(Leopold Auer)의 제자였던 러시아 태생의 교육자인 블라디미르 그라프맨(Vladimir Graffman)에게 사사했다.

1926년 그는 뉴욕시 에올리안 센터(Aeolian Center)에서 데뷔연주회를 갖은 이후,1927-1929년까지 벨기에에서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외젠 이자이(Eugene Ysaye)에게 사사하였다.

긴골드는 스승인 이자이로부터 음악과 자신의 감정을 이어주는 아름다운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고,결코 바이올린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않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유럽에 체류하고 있는 동안 긴골드는 벨기에,네덜란드 그리고 프랑스에서 연주회를 갖게 되어 어린 신동으로 많은 음악팬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1929년 겨울에 그는 대공황을 맞고 있었던 미국으로 다시 돌아와 가족의 부양을 위해서 뉴욕의 카페와 많은 브로드웨이 공연들(제롬 컨-Jerome Kern-의 뮤지컬,리차드 로저스,콜 포터의 뮤지컬 작품)에서 반주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였다.

1934년 그는 바이올리스트 글래디스 앤더슨(Gladys Anderson)과 결혼하였다.

 

1937년 그는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계약 단원으로 입단하여 토스카니 지휘하에 공연을 하였다. 긴골드는 7년 동안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면서 그는 자신의 음악인생에 중요한 인물로 토스카니니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았다.

1940년 긴골드는 비올리스트 월리암 프림로즈(William Primrose),오스카 셤스키(Oscar Shumsky),첼리스트 하비 사피로(Harvey Shapiro)함께 ‘프림로즈 사중주단'(Primrose Quartet)의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이 사중단은 차이코프스키,스메타나,브람스등의 사중주곡들을 Victor 레이블에서 녹음하였고,여러 나라를 순회 연주하였다.

사중주단으로 활동하다가 3년 뒤 그는 NBC 심포니에서 디트로이트 심포니(Detroit Symphony)의 악장으로 옮겼다.

3년 동안 디트로이트에서 그는 위대한 지휘자 조지 셀(George Szell)의 초대로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Cleveland Orchestra)의 단원으로 참여하였다.

긴골드를 잘 모르고 있었던,조지 셀은 긴골드가 제1바이올린 파트의 단원으로 활동하던 NBC 심포니를 객원 지휘할때 긴골드가 악장으로서 역량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 임명하였다.

긴골드는 13년 동안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 활동하면서 이 오케스트라가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로 올라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그는 뉴멕시코 6월 음악 페스티발의 악장으로서 25년 동안 참여해왔고,30년 동안 여름시즌에 뉴욕 Meadowmount 음악학교에서 실내악 시리즈를 이끌어왔다.

 

1960년 긴골드은 인디에나 대학교의 교수로 임명되어 30년 간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또한 사망하기 직전까지 그는 위대한 스승으로서 자신의 본분을 다하였다.

학생들이 결성한 챔버 앙상블을 지도하면서 늘 성실한 마음가짐으로 임하는 연주자의 정신적인 양식들을 전승해주었다.

1970년대 들어서 긴골드는 교편생활을 하면서 유명한 첼리스트인 야노스 스타커(Janos Staker)와 함께 Delos레이블에서 코다이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듀오 소나타 음반을 남겼다.

긴골드 교수는 미국 음악계를 대표해서 퀸 엘리자베스,비엔나프스키 파가니니,시벨리우스,닐센,차이코프스키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해왔고,1982년 인디에나폴리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를 창설하여 다양한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들 발굴해왔다.

1994년 긴골드는 이 대회의 위원장직을 자신의 제자이자,동료이었던 제이메 라레도(Jaime Laredo)에게 물려주었다.

그는 수많은 음악상과 박사학위들을 받았지만 유럽,아시아 등지의 음악원들과 음악학교에 초대받아 마스터클래스를 개최하는 것에 자신의 더 큰 미덕을 즐겼던 겸손한 바이올리니스트이었다.

요제프 긴골드는 학생들과 음악에 대해서 토론하고,같이 연주하는 시간들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그는 관대한 아량으로 자신의 특별한 재능들을 공유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긴골드가 길러낸 제자들 중에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는 조슈아 벨(Joshua Bell),제이메 라레도(Jaime Laredo)가 아마 우리에게 친숙한 연주자일 것이다.

이런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미국 음악계로 진출하여 미국 동부의 정상급 오케스트라들의 단원으로,솔리스트로,악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그의 제자들이 소속되어 있지 않은 미국 동부의 정상급 오케스트라들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오늘날 ‘긴골드 사단’이라 일컬어지는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긴골드는 1995년 2월 11일 인디에나 블룸밍톤에서 세상을 떠났다.

 

 

 

                                                

                        

                                   <Violinist, Josef Gingold and Joshua Bell >

                          

                                              <Josef Gingold and Hu Kun>

                

                                        <Josef Gingold and Cyrus Forough>

 

                                          <Josef Gingold and Elmira Darvarova> 

              

        <left to right, Louis Krasner, narrator Martin Bookspan, Ruggiero Ricci, Joseph Fuchs,
  Josef Gingold, panel chairman Yehudi Menuhin, Sidney Harth,Karen Shaffer, Henri   Temian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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