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han Milstein

나탄 밀스타인,Nathan Milstein(1904. 12. 31-1992.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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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태생의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린계의 거장을 꼽으라면 한국 사람들은 보통 야샤 하이페츠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중 하나를 들 것이다.

하지만 20세기 초,중반에는 사방에 훌륭한 바이얼리니스트가 넘쳐나고 있었는데 헨델,그리고 지네트 느뵈가 한 콩쿠르에 출연하여 겨루었다는 일화만 보더라도 당시 상황을 짐작할만 하다.

물론,이 중에 하이페츠 및 오이스트라흐와 겨룰 만한 사람도 있었다.

프리츠 크라이슬러가 세상을 뜨기 얼마 전에 “현재 가장 완벽한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말하고,남을 좀체 칭찬하지 않았다던 하이페츠가 자신의 제자들에게 “그의 연주회에 꼭 가 보라”고 권했던 사람이자, 남긴 녹음의 질로도 그렇다고 인정할 만한 사람 중에는 나탄 밀스타인이 아마 가장 많이 거론되지 않을까 싶다.

1979년,11월 5일 어느 화창한 가을,나탄 밀스타인은 이미 그가 이전에 몇 차례나 가졌던 뉴욕의 카네기 홀에 들어섰다.

아마 화려했던 밀스타인의 연주 경력가운데서도 특별한 날이었을 것이다.

거기 참석한 누군가의 말처럼 아마 ‘바이올리니스트들의 국제회의’ 라도 되는 것처럼 정말 모든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거기 모였다.

요셉 푸흐,이작 펄먼에서 모든 쥴리어드나 커티스 출신의 젊은 연주자들까지 그야말로 모든 이들이

거기 모여 여전히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는 밀스타인의 놀랍도록 생명력 넘치는 기교를 감상하기 위해서였고 물론 음악에 인생을 바친 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였다.

그 날의 연주는 밀스타인 연주경력가운데서도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지만 또한 그의 나이가 주는 낙조의 그늘도 필수불가한 일이었다.

이제 러시아 바이올린 학파의 마지막 찬연한 거장이 될지도 모르는 장엄한 연주는 러시아 세인트 페터스부르크 어느 스튜디오에서 스승이자 선배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레오폴드 아우어와의 조우를 시작으로해서 20세기의 중심을 가로질러 거장이 이룰수 있는 마지막 정점에 도달 한 순간이었다.

독특한 침착함을 갖췄던 하이페츠도 영원한 침묵의 세계에 빠졌고,미샤 엘만(Mischa Elman), Toscha Seidel(토샤 세이델),에프렘 짐발리스트(Efrem Zimbalist)도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1979년까지도 나탄 밀스타인은 열정적인 연주를 계속한 유일한 거장이었다.

그날 저녁 밀스타인은 바흐의 D단조 파르티타의 샤콘느를 초절적 드라마로 이끌었고,세자르 프랑크의 A장조 소나타를 우아하고 당당한 현학적 긴장감속으로 몰아 넣으며,우리에게 잊지 못할 저녁을 선물하며 우리 곁에서 멀어져 갔다.

나탄 밀스타인은 1904년 마지막 날,현 우크라이나의 흑해 연안 오데사(Odessa)에서 태어났다.

오데사는 당시 연주가의 일대 산지였다.

오이스트라흐 부자(父子),밀스타인,길렐스 외에 부근 지토미르(Zhitomir)에서는 1915년 리히테르가 태어났으니 정말 대단하다.

그는 처음에는 그 지방의 명교사 스톨리아르스키(Stoliarsky)에게 1914년까지 배웠고,후에 밀스타인은 세인트 페테스부르크에서 이미 전 유럽을 상대로 확고한 자리를 굳혔던 바이올리니스트 레오폴드 아우어밑에서 다시 정식 음악교육을 받는다.

그의 밑에서 1914년까지 다양한 음악교육을 받는데,그해 열렸던 학생 콘서트에서의 최종무대에서 5살의 어린 다비드 오이스트라흐(David Oistrakh)와의 첫 만남은 이후 많은 러시아 출신의 거장들과 교류를 하게 되는 첫 신호탄이었다.

밀스타인의 정식 데뷔는 그 다음해인 1915년으로 글라주노프가 직접 지휘하는 한 협주곡 무대였다.

이 데뷔무대는 커다란 반응을 몰고와 밀스타인은 향후 5년간 러시아 전역에 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밀스타인이 …”이 곡은 나에게 특히 의미가 있다.

아이로서 처음 공개 연주회에 출연했을 때 글라주노프 자신이 지휘했다”…고 말한 것처럼 후에 스튜디오 녹음을 세 번이나 하는 등 그가 가장 사랑하는 레퍼토리의 하나가 되었다.

이후 밀스타인은 레오폴드 아우어를 따라 완전히 페테스부르크에 정착했다.

1923년 이후 계속되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와의 합동공연으로 밀스타인은 더욱더 확고한 명성을 얻기 시작하는데 호로비츠와의 인연은 그가 솔로로 활동하던 당시 호로비츠의 여동생인 레지나(Regina)가 그의 피아노 반주자로 리사이틀을 함께 하면서 비롯됐다.

어쨌든 호로비츠와의 듀오 명성은 전 유럽으로 급파되어 고국 러시아를 떠나는 일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이 당시 피아티고르스키((Gregor Pyatigorsky)와 트리오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1925년에 밀스타인은 그의 조국을 영원히 떠나게 된다.

호로비츠 및 피아티고르스키와 함께 1925년 유럽 연주 여행을 떠난 후 러시아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으며 연주회 목적으로도 전혀 가지 않았다.

1926년 그는 브뤼셀에 가 전설적 바이올리니스트 외제느 이자이와 토론했다고 하는데,이자이는 그의 연주를 듣고 “당신은 내게는 더 배울 것이 없습니다”라 말했다고 전한다.

1929년에는 마침내 호로비츠,피아티고르스키와 밀스타인은 모두 미국에 정착했다.

밀스타인은 급기야 뉴욕 필하모닉과의 협연 초청연주를 갖게 되고 열화와 같은 미국인들의 환영을 받게된다.

그러나 호로비츠는 비첨이 지휘한 1928년의 전설적인 뉴욕 필 데뷔로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1번을 연주하며 ‘야성이 울부짖는 소리’나 ‘대초원에서 온 회오리바람’ 등으로 불리면서 바로 스타덤에 올랐지만,그에게는 이런 떠들썩한 에피소드는 전혀 없었다.

유럽과 미국을 오가는 바쁜 연주회를 가지던 중 전쟁발발과 더불어 미국에 완전히 귀화하여 전쟁 희생자를 위한 많은 자선 콘서트를 가졌다.

1948년 다시 유럽연주회에 나서 전통의 비엔나,루체른,잘츠부르크 페스티발등에 참가했다.

토스카니니,모리나리,클라우스,푸르트벵글러,부르노 발터,크나퍼츠 부쉬,쿠제프츠키,스토코프시키 등의 20세기를 풍미한 많은 지휘자와 협연무대를 가졌으며,그 스스로 바이올린으로 많은 곡들을 작곡하거나 편곡하기도 했다.

밀스타인은 흔히 러시아 학파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본능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신비로움이 사실은 지성에 의해 모두 제어 받는 완벽주의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밀스타인은 언급했듯이 호로비츠나 피아트고르스키나 토스카니니 그리고 모리나리등과의 협연무대로도 거장의 이름을 날렸지만,가장 독자적인 해석을 남긴 독주자로서도 유명하다.

그의 날카로운 기질은 확실한 연습이 밑바탕이 되어 확고해졌고,유려한 라인은 고전적이며서 순수했다.

선율 역시 크지는 않았지만,힘이 실려지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밀스타인은 그러한 힘을 악기에 싣기 위해 여러 차례 보잉 스타일을 바꿔나갔는데,물리적 힘에 의한 압력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스스로의 연습에 의한 철저히 빠른 동작을 통한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인토네이션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빼어났는데 이유는 비브라토가 지나치게 크거나 시

간이 지나서도 물리기 않았기 때문이다.

밀스타인의 주요 협주곡에 대한 해석은 일종의 고귀함과 아울러 자극적인 감성도 혼합되어 있다는 평을 받는다.

밀스타인이 연주한 수많은 레파토리 중에서도 특히 <파가니니아나>,또는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의 카덴자 부분등에서 최고의 테크닉을 보여준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는 녹음 분야에서 세계 기록 하나에 이름을 올렸는데,그가 브루노 발터와 뉴욕 필과 함께 1945년 녹음한 멘델스존 협주곡(Columbia)이 바로 세계 최초의 LP 발매다.

그는 커티스 음악원이나 유럽의 여러 곳에서 마스터 클라스를 가졌는데,그의 섬세한 성격만큼이나 학생들에게도 좋은 교사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1987년 자동차 사고로 팔을 다치지만 않았더라도 더 활동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도 쇠퇴하지 않았다. 그는 이 사고 후 런던에서 지내다가,88세 생일을 불과 10일 앞두고 1992년 세상을 떠났다.

바이올린 연주자들은 60대 전에는 연주력이 훌륭하더라도 70대가 돼서도 ‘명연주’를 남기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일반적으로 현악기 연주자들이 건반악기 연주자들보다 테크닉이 빨리 쇠퇴한다는데,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밀스타인은 그렇지 않다.

그가 만 69~70세 때 녹음한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는 이 레파토리의 ‘필청 음반’으로 꼽히며,71세 때 녹음인 리사이틀집에서도 기술에 거의 아무런 하자가 없기 때문이다.

80대에도 사고로 중단하기 전에는 계속 리사이틀을 열었다.

그가 가끔 좀 무뚝뚝하다는 말은 나오지만,무엇보다도 철저한 곡 해석,정평 있는 기술과 ‘은색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음색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으며,특히 전문가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1968년에 프링스 정부로 부터 ‘레종 도뇌르'(Officier de la Legion d’honneur)를 수상했으며,1986년 베니스에서 ‘음악의 평생 공로상A Life for Music’을 수상했다.

…“그의 빠른 동작,살아있는 눈동자,빛나는 검은 머리,그리고 그의 강한 중간치 체격들은 젊음은 그에게 항상 머물러 있을 듯한 생각이 들게 했다.

즉각적이며 거침없고,무해하며 순수한 그의 모습은 누구도 그를 비판하지 않도록 만들었고,그의 바이올린은 그의 팔이나 다리만큼이나 인체의 일부인 양 느껴졌다.” …    – 피아티고르스키 –

*.앨범

1.Nathan Milstein – Legend / Tchaikovsky & Glazunov Violin Concertos

Pittsburgh Symphony Orchestra,

Robert Irving, Conductor,
William Steinberg, Conductor,

Nathan Milstein, Violin

2.Bach – Sonatas For Unaccompanied Violin / Nathan Milstein

Nathan Milstein,Violin

3.Les Introuvables de Nathan Milstein, 4 CD

Nathan Milstein,Violin

       
        4.Beethoven-Violin Sonata No.9 Op.47 `Kreutzer` & Glazunov-Violin Concerto Op.82
                                              Nathan Milstein, Violin,
                                              Eugenio Bagnoli, Piano
  • 오데사 출신의 미국계 바이올리니스트 나탄 밀스타인은 당대의 헨릭 셰링과 더불어 가장 위대한 대가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 그는 특히, 바흐의 곡들을 흠모하고 즐겨 연주 하였다.
  • 밀스타인은 EMI에 다수의 음반이 있지만, 이번 오르페오에서 출시된 이 음번은 1956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 음반인데 레파토리또한 본인이 즐겨 연주하는 곡들로 구성되어 있어 전성기의 생생한 연주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5.The art of Nathan Milstein / Beethoven, Brahms, Dvorak, Prokofief, Tchaikovsky, Vivaldi

Nathan Milstein, Violin

Nathan Milstein 의 명연주를 담고 있는 The Art of Nathan Milstein 입니다.
EMI에서 93년에 출반되었는데, 원곡 녹음은 55년부터 66년까지의 Capitol Recordings 입니다.

6.Nathan Milstein / The Last Recital

Nathan Milstein, Violin,

Georges Pludermacher. Piano

<Nathan Milstein with harpsichordist and clavichordist Lina Lalandi, 1963>

<Nathan Milstein, Vladimir Horowitz, Gregor Piatigorsk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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